• Urgent Care에서 만난 한국환자
  • 조회수: 372 | 2019.05.14

난 그 부부와 아들이 중국인 일 것이라 확신을 하고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환자의 엄마가 혼자 말처럼, "아이 이걸 어떻게 하나?" 하고 탄식처럼 한마디 하셨다. 나는 놀라서 "어머나, 한국 분들이시군요?" 하고 한국말을 하니 환자의 부모도 환자도 한국인이냐면서 아주 반가워하셨다. 아들은 50 이 넘었는데 영어가 서툴러서 부모가 도와주러 들어왔다고 하는 데 부모님들도 영어를 겨우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안타까웠다.

 

어떻게 오셨나 물으면서 아들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이상한 것이 정신과 환자가 분명했다. 나는 속으로 많이 놀라고 마음이 아파서 조심스레 다른 환자에겐 결코 하지 않은 질문, 아드님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니 엄마의 대답은 내 예상대로였다.

 

“얘는 정신분열증 환자에요, 정신과 치료받으러 다니고요, 오늘은 얼굴에 종기가 크게 나서 왔어요. 좀 봐 주세요 “. 하고 엄마가 공손하게 말씀하시는 데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대답도 못하 고 잠시 그냥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정신병 중에서 정신 분열증이 제일 고약하다는 데 얘가 그 병에 걸렸어요. 치료를 해도 낫지도 않고 낮에는 정신병 환자들을 위해서 만든 데이케어 가서 거기서 시간 보내고 저녁에 집에 와요. 이렇게 한국 분을 여기서 만나니까 너무 반갑네요.”

 

“그러시군요, 그래야 부모님들도 좀 볼일도 보시고 쉬기도 하시지요. ” 아들은 데이케어 가기 싫다 고 가끔 빠진다 하여서 빠지지 말고 가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 좋으니까 꼭 가라고 했더니 '그러마'라고 대답을 하는 데 그마저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부모님 두 분은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자식이라고는 이 아들뿐인데 이렇게 되었으니 그 마음고생을 말로 해서 무엇하리오? 마음이 다 까맣게 타들어 갔겠지. 이민 오신지 얼마나 되셨나 물으니 40 년이 되었고 아들은 10 살 때 여기에 왔으며 한국에선 멀쩡했는데 미국에 와서 이 병이 발병했단다.

 

왜 갑자기 그랬냐고 다시 여쭤보니, 영어가 잘 소통이 안돼서 힘들어하다가 이렇게 됐다 하시기에 나도 모르게 “열 살이면 영어 충분히 배울 나이였는데요.” 하고 말씀드리고 나니 너무나 민망하고 죄송스러워서 더 이상 여쭤 보지를 않았다.

 

말이 안 통하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팔짝 뛸 노릇인지 난 우리 아들이 6살 때 알았다. 우리 아들이 6살 때 한국에 다니러 갔다가 출국하러 공항에 갔는데 아이가 없어져 버렸다. 비행기는 곧 타야 되는데 큰일 났다고 어른들이 각기 흩어져서 아들을 찾아 나섰다. 안내 방송해 주는 데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한국말이 서툰 아이를 위해서 영어로 방송을 부탁을 하고 기다려도 아이는 나타나지를 않고 나는 아이를 못 찾을까 봐 그야말로 속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비행기를 놓치더라도 아이는 찾아야 하니까 너무 걱정되고 무서워서 거의 울음이 터지려는 순간, 친구 주효가 아이를 데리 고 나타났다. 그때의 환희와 감격이란……….. 친구에게 어디서 찾았냐 했더니 아들은 미군 흑인 병사와 영어로 쏼라 대고 있었는데 아들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 에녹아, 엄마하고 비행기 타고 뉴욕에 가야 하니까 얼른 가자”라고 떼어 가지고 오는 데 너무 불쌍하고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에 머문 것은 2주 정도 밖에 안됐는데 녀석이 영어가 안 통하니까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 그러다 영어가 통할 것 같은, 미국에서 많이 본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는 사람을 보니까 딴에는 몹 시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 아이도 이렇게 언어 장벽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데 어른 들은 얼마나 더 심할까 하고 속으로 몹시 놀랐다. 이 일을 겪은 후로, 그전에도 영어 통역이 필요하면 기꺼이 달려가서 해 주던 것을 더욱 열심을 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러 쫓아다녔다. 사람들이 미안하고 고마워할 때마다 내 대답은 언제나 한 가지였다. “ 할 줄 아는 영어 하는 데 뭐 돈 드나요? 괜찮아요. 오늘 시간 있어요. 미국 직장 안 다니면 사실 영어 제대로 하기 힘들 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아들은 영어로 무슨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기에 정신이 이토록 피폐해졌을까? 40 년 전이면 한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품고 사람들이 많이 이민 올 때였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태평양을 건넜을 텐데 “나는 정신병 환자입니다” 하고 얼굴에 쓰여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저려왔다.

 

“이 종기는 항생제를 써야겠어요. 그리고 바르는 약도 처방 해 드릴 테니 하루에 두 번씩 바르세요. 잘 안 나으면 다시 오시고요”.

 

부모님들은 내가 언제 또 근무를 하느냐 물으셨다. 나는 파트타임으로 어쩌다 여기 오니까 다시 만나기는 힘드실 것 같지만 여기에 월, 수요일에 한국 사람이 환자들을 봐주니까 그때 약속을 하고 오시라 알려드리니 영어에 대한 부담을 잠시나마 잊으셔서 인지 아주 반가워하셨다.

 

그리고 나는 이 환자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한국인이었기 때문인지 나는 이 환자가 잘 지내고 있을까? 하고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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