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도
  • 조회수: 358 | 2019.04.08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병을 걱정한다."

 

오늘 일정의 세 번째 환자 집에 도착했다.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마음이 편했다. 방문간호사들은 극빈자에서부터 입 벌어지게 부자인 사람들까지 다 돌본다. 대개 부자들은 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고 또 담배를 집 안에서 피우는 사람들이 없어서 담배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일이 없다. 그런데 집이 어째 낯이 익었다. '이 동네 집들은 다 이렇게 비슷하게 지었는가' 생각하며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60대 초반의 남자였다.

 

"슐러 씨입니까? 방문간호사입니다."

 

아침에 방문 시간대를 알려주고 약속했던 터라 환자는 어서 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 부엌 쪽에서 전에 돌보았던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Walker에 의지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굽어진 어깨였지만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랬다. 몇 개월 전에 방문했던 환자의 집이라 익숙했던 것이다. 그때 환자를 부축하여 샤워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환자는 심각한 피로 상태에서 계속 침대에서 자고만 싶어 했던 기억이 났다. 이제 건강이 거의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놀라웠다. 92세로 상태가 더 악화되어 죽는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만큼 회복한 것을 보니 반가웠다. 환자 아내의 헌신적인 돌봄이 인상적이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런데 오늘은 그의 아들이 아파서 다시 찾은 것이었다.

 

아들 환자는 최근에 심장병이 심해져서 우리 회사의 돌봄을 받는 중이었다. 부정맥, 심실 조기수축(Premature Ventricular Contraction, 이하 PVC), 심부전증(Congestive Heart Failure, 이하 CHF) 등, 심장병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현재는 외부 세동제를 달고 언제 있을 줄 모르는 심장 발작을 대비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병력을 보니 심장박출률(Ejection Fraction, 이하 EF)이 겨우 28%였다.(1) 어쩌다가 젊은 나이에 이렇게 됐을까.

 

환자와 환자의 엄마가 함께 의자에 앉았다. 가벼운 대화를 나눈 후 질문을 했다.

 

"젊으신데 어떻게 이렇게 심장병을 갖게 되었나요?"

 

검푸른 얼굴 피부색이 유난히 눈길이 가는 환자는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병력을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원래는 건강했죠. 제 잘못이에요. 제가 최근까지 Meth(2)를 했습니다. 담배도 끊은지 얼마 안 되었고요. 갑자기 쓰러졌고 운 좋게 이렇게 살아있네요."

 

옆에 앉은 그의 노모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며 그의 손을 쓰다듬으며 대화를 거들었다.

 

"약을 잘 먹으면 좋아지겠죠. 그렇지 않니?"

 

노모의 말이 맞긴 맞다. 아직 환자가 젊으니 마약을 중단하고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른다면 심장질환이 호전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낫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에 많이 달렸다.(3)

 

환자 옆에서 60세 넘은 자신의 아들을 쓰담쓰담하는 노모를 보고 있으니 어릴 때부터 곧잘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자기 몸을 잘 돌보는 것이 효도이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90세가 다 되어가는 엄마의 마음에 걱정을 끼치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든다고 다 철이 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답답함을 느껴졌다. Meth를 하지만 않았어도 심장이 괜찮았을 텐데...

 

Meth로 불리는 Methamphetamine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마약이다. 대마초가 합법화되면서 최근에 불법 마약 1위로 올라선 흔한 마약이다. 특별히 Meth는 청소년들이 많이 손을 대서 미국 사회의 문제 중 하나이다. 이 환자의 경우처럼, Meth는 심각한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데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성이 수개월 만에 90세 노인의 심장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심장내과에서 일할 때 EF이 18%인 젊은 남자 환자를 본 적이 있다.

 

환자의 맥박을 손목에서 쟀다. 1분에 42-44회로 불규칙하게 뛰었다. 불규칙 서맥 Irregular Bradycardia였다. 약들을 확인해 보니 한 약이 마음에 걸렸다.Carvedilol 베타 블럭커(Beta Blocker).

 

환자는 이 약 3.125mg 용량의 알약을 하루 두 번 먹고 있었다. Beta Blocker는 대개 의사가 맥박 60회 이하 이거나 수축기 혈압(SBP, Systolic Blood pressure)이 100이하이면 중지할 것을 환자들에게 권고한다. 환자의 약 목록을 살펴보니 그런 지시가 없었다. 그냥 모른척하고 방문을 마칠 수는 없었다.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 자리에서 심장전문의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두 명의 사무직 직원을 거쳐 가까스로 의사와 직접 상의할 수 있었다. 담당의는 인도인 억양이 베여있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4)

 

"저도 알고 있습니다. 환자가 며칠 전 우리에게 방문했는데 그때도 비슷했어요. 심전도(EKG)를 찍었더니 PVC가 많았고 맥박은 60대 초반이었어요. 약한 PVC는 손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환자가 증상을 느끼지 않는 한 약을 계속 먹어야 해요."

 

PVC가 맥으로 잡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처음 배우는 사실이었다. 심장내과에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으니 황당했다. 경력이 많은 사람이 언제나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간호사가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연수만 흘렀다면 환자는 언제나 위험하다. 그러나 첫 직장에서 제대로 된 간호교육을 받았다면 경력이 짧은 간호사들도 좋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쨌든 환자의 상태와 담당 의사와 오고 간 대화를 Clinical Note 란에 자세히 적었다. 다음 간호사들이 이 노트를 보면서 환자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것이다.

 

환자 곁에서 사랑스러운 눈으로 환자와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환자의 친모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나게 했다.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떠난다고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을 때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네가 얼마나 독하길래 얼굴 가족 얼굴 안 보고 살려고 하냐...' 사실, 부모님은 미국에 거주하는 가까운 지인과 친척들이 몇 분 있었다. 먹고살기 바빠 10년을 넘게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막내아들이 먹고살려고 미국을 가는데 반대는 할 수 없지만 적극적으로 찬성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워낙 미국으로 이민 오고 싶었기 때문에 이후 어떻게 될 것인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외국에 이민 가려는간호사들은 가족과 떨어지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하긴, 같은 한국 땅에 살면서도 서로 얼굴 안 보고 사는 사람들이 있긴 있지만 말이다.

 

미국에 온 지 3년 만에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그때 나는 지금의 아내에게 한 조건을 내 걸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것. 누구인들 부모님을 자주 뵈러 가기를 원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나는 가정 재정에서 우선순위를 그것으로 하자는 말이었다. 큰 집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좋은 차를 몰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가족은 소중하니 한국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일에 돈 쓰는 것은 좀 후해 졌으면 좋겠다.... 뭐, 그런 뜻이었다. 모든 가족이 미국에 있는 아내는 고맙게도 흔쾌히 내 요청을 받아주었다. 나 또한 아내의 중요한 부탁도 받아주기는 했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해지는 것은 가족이다. 특히나 빠르게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는 것은 가슴 짠한 일이다. 큰 효도는 못해도 얼굴 자주 보여주고, 행복하게 살며, 전화 자주 드리는 것, 문제 일으키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이 효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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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F(Ejection Fraction, 박출률)

좌심실의 혈량이 한 번의 수축기에 얼마만큼 나가는지 측청하여 심부전증의 중증도를 측정한다. 일반적으로 50-70% 방출률이면 건강한 것인데 40% 이하이면 비정상으로 본다. 마약 사용으로 인해 EF가 20% 밑으로 떨어진 젊은 환자를 본 경험이 있다.

 

(2) Methamphetamine을 짧게 Meth라고 부른다.

이런 약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 병동 생활을 얼마 하지 않은 신규 간호사일 때 검사실에서 내 환자의 Blood Culture 결과를 가지고 전화를 했어 Staph positive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Staph이 뭔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Staph은 Staphylococcus aureus의 약어이다. 미국인들은 심지어 이름까지도 짧게 부른다. Barbara는 Barb, Christina는 chris로 Tiffany는 Tiff으로 종종 부른다.

 

(3) 심장전문의들은 마약에 의한 심장손상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래 웹사이트를 참고

https://medicalxpress.com/news/2018-11-meth-younger-harder-to-treat-heart-failure.html

 

(4) 미국 의료계에는 세계 각국에서 이민 온 일꾼들이 많다.

각각의 나라들의 억양에 익숙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인 억양이 가장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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