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가슴의 상처에 얽힌 사연
  • 조회수: 3341 | 2015.11.03

 

그는 싱글벙글 웃는 젊은 남자 환자였다. 혈액 검사 결과를 보러 왔다고 하여서 내가 결과를 먼저

알려주겠다고 하고 검사 결과를 보니 다 괜찮은데 liver enzyme이 좀 올라가 있었다.

 

나: 혹시 술을 좀 드시나요?

 

환자: 많이 안 마셔요. 조금 마시지요.

 

나: 조금 드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여기 검사 결과 보니까 환자분이 술 많이 드신다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간이 “나 너무 힘들어요. 도와 주세요.” 하고 호소하고 있는데요. 술을 얼마나 드세요? 매일 드시나요?

 

내가 간이 말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니까 환자가 우스웠는지 킥킥 거리고 웃었다.

 

환자: 사실은 매일 마셔요. 검사 결과 좀 볼 수 있을까요?

 

나: 여기 보세요. 숫자상으로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간은 몸에서 제일 큰 장기이고 술을 그렇게 매일 드시면 간이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술 한잔에 뇌세포가 10만개씩 망가진다는 것 아시나요? 지금 간이 경고 싸인을 보낼 때 주의 하시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실 거에요.

술을 아주 드시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음주량을 줄이시라구요.

 

환자: 알겠습니다. 신중히 고려하겠습니다.

 

나: 그리고 또 비타민D가 많이 부족 하시군요. Vit D supplement를 처방해 드릴테니까 일주일에 한번씩 잊지마시고 꼭 드세요. 그리고 음주량 줄이시는 것도 꼭 실천하셔야 합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시지 마시고, 해 아래에 있는 사람치고 스트레스 없는 사람 없으니까요, 술 말고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 풀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나는 해 보았자  쓸데 없는 소리를 했다. 

 

나: 악기 연주는 어떠세요? 나는 술을 안 마시니까 스트레스 풀려고 피아노를 치거든요.

 

환자는 대답대신 '오, 그러세요?' 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술을 마시지도 않는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셔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할 수나 있을까? 나는 속으로 약간 후회를 하였다.

 

 

음주로 인한 liver enzyme 때문에 길게 잔소리를 늘어 놓으니 환자는 처음에는 웃으면서 듣다가 얼굴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검사 결과는 그것들 말고는 괜찮은데 또 뭐 질문 있느냐고 물으니 다리를 보여 주면서 여기 시커멓게 변한 부분이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오랫동안 별 문제 없이 그냥 있는 반점이라면 별로 염려될게 없지만, 그래도 의사에게 묻고 보내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의사가 들어왔길래 다 괜찮은데 liver enzyme elevation and low Vit D가 문제라고 하였더니 환자가 fatty liver history가 있다면서 이정도 수치가 올라간 것은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했다. 지금까지 음주량을 줄이라고 잔소리를 늘어 놓은 내가 우스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마디 덧붙였다.

 

나: 환자분이 매일 술 드시는 데요?

 

의사: 매일 술 마셔요?

 

환자: 예쓰.

 

의사: 얼마나 마셔요? More than 2 ounces every night?

 

환자: ……..

 

의사: how much do you drink every night? More than 2 or about 2?

 

의사의 목소리 톤은 올라갔다.

 

환자: 3-4온스요.

 

의사: 음주량을 당장 줄이세요. 이미 fatty liver 상태에서 매일 2온스 이상 알콜을 마시면 머지 않아Liver failure가 옵니다. 내 말 명심하세요.

 

 

그리고 의사는 내게 exam을 맞기고 급한 걸음으로 나가 버렸다. 환자의 심장소리를 들으려고 청진기를 귀에 꽂고 셔츠 단추를 하나 풀은 나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환자 가슴의 상처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꽂았던 청진기를 귀에서 뺐다. 환자 가슴에는 open heart surgery incision scar와 비슷한 20센티도 넘어 보이는 칼자국을 방불케하는 직선의 상처가 길게 나 있었다. 환자의 나이로 보아도 그렇고 위치로 보아도 open heart surgery scar는 틀림없이 아니었다. 환자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 이미 귀에 꽂은 청진기를 빼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난 청진보다 왜 그런 상처가 났는가 먼저 묻고 싶었다.

 

나: 이 상처는 어떻게 났나요? 칼자국은 아닌것 같은데, 상당히 예리한 물체에 찢어진 상처같군요. 상처의 위치가 조금만 틀리면 open heart surgery incision line 같아요.

 

심각한 얼굴로 묻는 내게 그는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환자: 여자 친구가 손톱으로 할퀴었어요. 별거 아니에요.

 

나: (아니 이 깊고도 긴 상처가 손톱자국이라니……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 여자 친구하고 아직도 사귀나요? 당장 헤어지세요. 어떻게 사람 몸에 이토록 심한 상처를 낼 수가 있지요? 너무 심하군요. 더 큰일 나기전에 헤어지세요. 무슨 짓을 해서 여자친구가 이런 심한 행동을 했나요? 바람 피웠어요?

 

환자: (여전히 싱글 거리며) 예쓰. 그렇지만 이미 헤어졌어요. 괜찮아요.

 

나: 아니 왜 그랬어요? 헤어졌다니 다행이군요. 상처가 아주 깊었던 것 같은데 별 문제 없이 나았나요? 곪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이것 때문에 많이 고생했을 것 같군요. 의사에게는 갔었어요? 이 상처는 없어질 것 같지가 않군요.

 

환자: 네, 괜찮았어요. 의사에게는 안 갔고요. 약국에서 항생제 연고 사다 부지런히 발랐더니 나았어요. 몇년 전 일이어서 정말 괜찮아요.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여자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나도 여자지만 온 몸에 약간 소름이 돋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 단골 메뉴인 폐비 윤씨와 성종의 이야기, 왕비 윤씨가 남편 성종의 얼굴을 할퀴어서 그 전부터 밉상이었던 그녀를 시어머니가 그 일을 빌미로 완전히 폐위 시켰다는.. 우리 모두가 알고있는 그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 며느리가 아무리 미워도 아들 얼굴을 할퀴었다고, 아들 잘못도 있으련만 며느리를 내쫓아서 결국 조선 왕실의 또다른 비극 연산군을 만든 시어머니가 제일 잘못이 크다고 늘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보기에도 끔찍한 손톱자국 상처를 보니 어쩌면 그 옛날, 성종의 용안의 상처도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손톱 자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갔다.

 

여자의 질투를 떠올리니 또 하나 생각나는 사건,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그들은 성공한 치과의사 부부였다. 적어도 남편이 병원 여직원과 바람을 피울때 까지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낸 부인은 둘이 투숙한 호텔로 찾아가서 남편이 들어간 방을 가르쳐 달라고 프런트 데스크에서 심하게 난동을 부렸으나 호텔측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법적으로 가르쳐 주게 되어 있지않았던 모양. 남편이 투숙한 방번호를 알아 내는데 실패한 그녀는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그녀는 지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남편의 외도 상대의 차를 찾아내어 차를 열쇠로 깊게 스크래치를 내놓고 올라와서는 호텔 입구에 서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그녀는 호텔 앞에 서있는 남편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그녀의 벤츠로 남편을 향해 돌진 했고, 신문에는 살인에 쓰인 무기가 7톤짜리라고 쓰여있는 것으로 보아 벤츠 자동차의 무게가 7톤인가 보다 짐작했다. 차에 치인 남편이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도 부인은 벤츠로 또 한번 남편을 치고 지나가서 확실하게 살인을 하여 미국이 시끌 벅적 했던 사건.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겠냐는 그녀를 동정하는 동정파와 아무리 남편이 미워도 그런식으로 잔인하게 살해할 수가 있느냐는 비난파로 들끓었던 사건. 외도 상대 얼굴을 할퀴고 싶은데 하지 못해서 차를 대신 긁어놓은 모양인데 왜 여자들은 질투가 나면 할퀴는지 모르겠네…… 그녀가 재판을 받으러 나와서 하도 통곡을 하여서 재판장이 그녀를 몹시 야단을 쳤단다. (그만 울으라고, 진행 할 수가 없다고, 자꾸 울면 내쫓겠다고..)

 

 

이 사건은 오래전 일이지만 내가 이렇게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법정에서 그녀의 시아버지, 즉 피해자의 아버지되시는 분의 태도 때문이었다. 자기 아들을 죽인 며느리를 내 아들이 잘못 하여서 며느리가 그렇게 하였으니 제발 우리 며느리 좀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감옥에는 보내지 말아 달라고, 당신은 며느리를 사랑한다고 눈물로 사정,사정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남의 일이라도 '어찌 세상에 이런일이 있나?' 하고 많이 심란 했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어찌 그런 바람둥이가 나와서 이 사단이 일어났을까? 바람 한번 피웠다가 부인에게 참혹하게 살해 당한 아들도 좀 안됐지만 아버지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미스터 손톱자국, 과거의 여자 친구가 남겨준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징표(?)를 평생 간직해야 하는 행운아가 된 그는 여전히 싱글거리는 얼굴로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손톱 자국이 그렇게 무서운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내평생 처음 보는 참으로 끔찍한 그의 손톱자국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스쳐가던 생각은 그에게 처방전을 써주는 것도 깜박하게 했다. 환자가 나가고 한 10분 정도 지난 후에야 나는 아차 싶어서 후다닥 뛰쳐 나가니 다행히 그는 아직도 대기실에 있었다.

“들어 오세요, 다시 들어 오세요. 처방전 받아 가세요.” 쑥스럽게 웃으면서 손짓하는 나를 보자 그도  웃으면서 따라 들어왔다.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als 에는 의학영어 회화뿐 아니라 ......카더라 통신이 아닌 미국에서 간호사 로 근무하는 저자가 쓴 미국 간호사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책 구입을 원하면 click here

 
 
 

(p.s, 새 출판 이야기)

NP 일기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NP 일기가 “뉴욕 클리닉 진료 일기” 라는 제목으로 11월말경 출판되며 교보, 영풍 인터넷 24 등 국내 서점에서 유통될 예정입니다.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표지를 먼저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아울러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las” 도 위에 언급한 서점에서 책을 사기 전에 보고 싶다고 하는 의견들이 많아서 유통을  시작 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뉴욕 클리닉 진료일기는 일기외에 미국생활 단상. 그리고 내 인생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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